[기고] 영화 '암살'보다 더욱 극적인 삶을 살았던 박희광 독립투사, 왜 기념관 건립 진척이 없나 ? <한국유통신문.com>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의 구국애족의 삶이 9월 9일 매일신문 18면에 전면 기사화됐다. 구미시를 알리는 스토리텔링 홍보사업의 일환으로 '신화와 현실을 잇는 금오산'이라는 타이틀로 박희광 선생의 일대기를 소개. (전국= 한국유통신문) 김도형 기자= 2015년 최고의 영화로 평가되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1200만 관객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조국의 배신자, 너를 처단한다"…임정 친일파 암살 특공대로 맹활약 | |  | | 1924년 7월 26일 자 독립신문. 사진 왼쪽이 박희광(예명인 박상만으로 보도)의 당시 모습. 박희광 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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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통해 1933년 당시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친일파 암살작전을 둘러싼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들의 활약상이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며 가슴 뜨거운 감동을 자아냈다. 영화 암살은 허구이긴 하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독립군 양성소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투사들의 활약상과 실존 인물이었던 의열단을 이끌던 약산 김원봉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지게 만들었다. '암살'은 마음속 감동으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독립투사들의 조국을 위해 바친 불꽃같은 삶과 죽음이 가슴 깊숙히 여운이 남는 영화이기도 하다. 
| ▲영화 '암살'의 주인공인 3인조 독립투사들의 의거전 모습. 영화보다 더욱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독립투사들의 실화들이 많이 있다. |
하지만 영화보다 더욱 감동적인 구미출신의 독립투사인 박희광 애국지사의 실화가 엄연히 실제하고 있고, 그 독립투사의 아들인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 박정용 사무처장이 평생을 몸바쳐 부친의 뜨거웠던 삶과 조국 사랑의 정신을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정갑주, 조국을 배신한 첩자! 우리는 조선독립을 위해 싸우는 투사다. 너를 조국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윗 글은 박의광 독립투사가 친일파 처단 당시 내린 사형 선고문의 일부분이다. 1924년 7월 22일 만주 봉천성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이 날라 들었다. 아쉽게도 불발이었지만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폭탄을 투척한 장본인들을 대한통의부 5중대 소속의 독립투사인 김광추, 김병현, 박희광 독립투사였다. 이들은 당시 신문에 삼장사(三壯士)라고 알려졌고 봉천성 일대의 일제 앞잡이 단체였던 보민회와 일민단 사람들을 숙청하는 임무를 맡았고, 친일 앞잡이들에게 Ɖ인조 암살단'이라는 공포의 존재가 되었다. 정갑주는 여순경찰서 고등계 첩자로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며 1924년 6월에 삼장사의 사형선고문을 들은 뒤 총살됐다.  | ▲영화 '암살'보다 더욱 감동적인 삼장사라 불리운 독립투사의 모습들. 친일파를 처단하기 전 사형선고문을 낭독하는 장면 |
이후 봉천성 폭탄의거일까지 보민회 이용구, 일진회 친일파의 거두 최정규 일당 처단 등 맹활약을 했다. 1924년 7월 22일 저녁, 대낮에 벌어졌던 일본총영사관 폭탄의거 실패에도 불구하고 삼장사(三壯士)는 거액의 군자금 탈취를 위해 일본 요정 금정관에 침입했다. 당시 잠복해 있던 일본 경찰들과 총격전이 벌어졌고, 치열한 총격전 끝에 김광추 의사는 현장에서 적의 총탄에 피탄되어 순국했고, 김병현 의사와 박희광 의사는 체포됐다. 뤼순형무소에서 김병현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박희광 의사는 호적상 나이가 미성년자로 기재되 있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박희광 선생은 감형돼 1943년 출옥, 백범 김구 선생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박희광 선생은 백범의 서거 뒤 모든 것을 접고 왜관으로 내려와 가정을 일궜고, 감옥에서 익힌 재봉기술로 양복수선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1970년에 타계하셨다.  | ▲박희광 선생의 40대 시절 모습 |
박희광 선생은 김구 선생을 끝까지 보필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뜻있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박희광 선생의 독립운동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져 1968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받게 되었다. 진척 없는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 선양사업 국내 유수의 언론을 통해 박희광 선생의 업적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독립운동의 영웅을 배출한 구미시에서는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에 무심한 현실이다. 박정용 사무처장의 노력으로 국가보훈처로부터 기념관 건립에 7억원의 국비를 확보했지만, 시비와 도비의 지원이 없어 국비를 반납해야만 했다. 또한 박희광선생의 기념관이 들어설 구미시 봉곡동 땅을 문중으로부터 기증받았지만, 사업이 5년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반납해야한다는 약조가 되어있는지라 안타깝게도 금년 7월에 문중에 귀속되었다고 한다.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은 언제쯤에나 가능할까? 애국지사 선양사업과 관련된 부서인 구미시청 주민복지과에 문의를 해보았다.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 문제는 주변 상황과 여건이 맞아 떨어지게 된다면 그다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으로 구미시청 관계자는 판단하고 있다. 현재 서훈을 받은 구미시 출신 독립운동가의 수는 총 31명이라고 하며, 구미시에서는 각 지사들마다 형평성에 어긋나지않게 선양사업을 해오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담당자에 따르면 왕산 허위 선생의 경우 독립운동가로서의 급수가 1급이며, 박희광 선생과 장진홍 선생 그리고 권쾌복 선생은 3급이라고 한다. 박희광 선생과 장진홍 선생의 경우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권쾌복 선생의 경우는 아직 없어서 해당 지역과 구미시에서는 동상 설립 추진을 계획중이라고 한다. 구미시의 입장은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이 추진된다면 장진홍 선생과 권쾌복 선생의 기념관 또한 공평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여론이 부각될 것을 미리 염려하는 모양새다. 또한 박희광 선생의 경우 박정용 사무처장의 노력으로 2013년도에 국비 7억원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구미시와 사전에 조율이 안 된 관계로 시비 7억원과 도비 7억원 확보가 어려웠다며 구미시 관계자는 얘기한다. 그렇다면 사전에 국비 확보를 비롯해 시비와 도비 예산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 측과 밀도있는 논의와 함께 주변의 여론을 모아 일을 추진했다면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은 가능했다는 얘기다. 단지, 형평성의 논리를 따지며 반대하는 일부 인사들의 입김에 의해 기념관 사업이 차질을 빚었지 않았을까 추측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급수를 떠나 조국을 위해 몸바친 독립운동가들 모두가 위대하며 마땅히 똑같은 대우를 해드려야만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모든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기념관 설립은 재정적인 문제와 사후 관리에 따른 여러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뒤따른다. 따지자면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의 경우, 많은 혜택을 받고 있어 형평성 차원의 이유를 거론하는 구미시의 논리와는 어긋난다. 예를들면, 2014년 12월 11일에 열린 제192회 제2차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윤종호 의원은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의 사당 설립에 관련된 문제를 지적하며 공평성에 관해 언급했다. 더불어 한 달에 5명 밖에 방문하지 않는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운영비가 2억 5천 900만원이 나간다며 질타한 바가 있다. 이에 따라 다른 독립운동가의 기념관 설립 부분에 대해서 윤 의원은 재정적인 이유를 들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보훈단체 및 대상자에게는 적극적인 예우와 지원으로 사기진작과 자긍심을 고취한다. 또한, 2014년 11월 11일에 열린 제191회 제5차 기획행정위원회에서는 박세진 의원은 '호국보훈단체 및 회원 예우개선'에 관해 화두를 꺼내며, 박희광선생 생가 복원과 관련해 배정미 주민생활지원과장에게 질의를 했다. 박 의원은 생가 복원이 안되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구미시의 답변을 요구했다. 배 과장은 1급과 3급 등의 급수를 거론하며 형평성 차원에 관한 사항을 이유대며, 도비가 세워지지 않아 시비도 세워지지 않았다며 건립에 차질을 빚은 이유를 얘기했다. 배 과장에 따르면 보훈처로부터 국비가 내려오게 되면 도비가 세워지게 되고 그에 따라 시비도 세울 수 있다며 앞으로 경상북도와 긴밀히 협조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한편 금년 6월 9일에 열린 제196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사당 건립과 관련해 8억원의 비용이 든다는 구미시 김구연 문화예술담당관의 얘기가 나왔다. 김 담당관에 따르면 도비 2억에 시비 4억으로 사당 건립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에 대해 김재상 의원은 사당건립에 대해 도에서도 인정하는 만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 했던 분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사당 건립은 다른 행사를 줄이더라도 추진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2013년 당시 구미시의회에서는 박희광선생기념관 설립 추진을 위해 구미시에 청원서를 냈지만 수렴되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기념관 운영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염려한 나머지 구미시에서 고심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오죽했으면 구미시의회 윤종호 의원 조차도 왕산허위선생기념관 사당건립 문제를 언급하며, 3급수인 박희광, 장진홍, 권쾌복 선생의 기념관이 설립된다면 매년 10억원 이상의 운영비가 들어갈 것이라며 기념관 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구미시와 같은 입장을 보인 바가 있다. 각종 기념관 설립의 형평성 논란은 지역의 힘의 논리에 따라 좌우되는 듯, 운영 또한 미숙한 현실 또 한편으로 2014년 12월 5일 열린 제192회 제1차 기획행정위원회에서는 왕산선생기념관 사당건립에 따른 박희광선생기념관 건립 추진에 관한 형평성 문제 논란이 제기됐고 더불어 기독교 역사 자료관 건립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구연 문화예술담당관에 따르면 기독교 역사 자료관 건립은 10억여 원이 소요되는 사업이며 이중 시비가 6억 5천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박세진 의원은 기독교 전시관을 짓는 이유에 대해 교리전파 목적이 아니냐며 따져 물었고, 김구연 담당관은 종교시설을 완전히 배제한 순수한 전시시설 위주로 짓는다며 답변을 했다. 박 의원은 110년 된 기독교 역사를 구미시민들에게 알릴려고 하는 의도라며 되묻자 김구연 담당관은 수긍했다. 교리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은 구미시에서 지원할 수 가 없다며 박 의원은 기독교 역사관 건립사업을 검토안으로 돌리기도 했다. 이날 안주찬 의원은 인동에 위치한 3·1문화재 건립에 약 6억 5천만원이 든 것을 언급하며 3·1문화재 행사에 매년 4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되 행사를 왜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박희광선생기념관과 관련해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형성되면 건립이 가능하다. 구미시 주민복지과에 따르면 권쾌복 선생의 동상 건립이 추진되고 난 뒤라면 박희광선생기념관 설립 문제도 다시 한 번 추진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전에 지역사회의 동조를 얻게 된다면 예산을 세우는 과정에 있어 순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미시에서는 관광코스와 스토리콘텐츠 개발을 위해 용역비가 7천만원이 계획되어 있고, 문화관광 스토리텔링 발굴을 위해 4천만원이 책정되어 있다. 구미시는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하므로 역사적 현장에 내용을 모아 스토리 개발과 콘텐츠한다면 관광자원화 된다는 취지다. 영화 '암살'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 바탕이 된 이야기가 그 얼마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는지 우리는 실감나게 체험했다.  |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의 실제모델은 남자현 항일투사셨다고 한다. |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아온 박희광 독립투사의 이야기가 더욱 널리 알려져 구미시를 알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구미시의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기념관 설립에 대한 의지가 요구된다. 형평성 이전에 박희광선생기념사업회는 수십년간 박희광 독립투사의 불굴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데 노력을 해왔고, 이제는 그의 용맹했던 과거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져 귀감이 되고 있다. 경상북도에서는 지난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총 302억원을 투입해 기념관의 재단장과 확장을 진행중에 있다. 김희곤 경북독립기념관장은 신흥무관학교 체험관도 지어 청소년들에게 당시의 시대상황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계획임을 알린 바가 있다. 기념관의 용도를 적극 활용하는데 있어 경북독립기념관의 운영방식도 섭렵할 필요가 있다. 안동지역의 청소년들은 의무적으로 경북독립기념관에서 숙식하며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역사를 배우며 체험한다고 한다. 그러므로서 독립투사들의 뜨거운 삶에 대한 열정을 깨닿게 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되는 교육효과를 꽤하고 있다. 따라서 박희광선생의 기념관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친일파 처단을 위해 훈련을 해야만 했던 대한통의부 5중대 시절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체험관과 용맹히 적과 맞써 싸웠던 현장을 재현함으로써 실질적인 교육효과를 도모할 수가 있다. 박정용 사무처장은 구미시의 의지만 있다면 벌써부터라도 건립이 추진됐을 거라며 안타까워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박희광 선생을 존경하고 알려진 만큼 언젠가는 기념관이 꼭 세워질 거라는 믿음으로 긍정의 모습을 보인다.  | ▲신흥무관학교에서 양성된 독립투사들의 훈련 모습. 산체험 현장을 만듦으로서 시대상황을 리얼하게 체감하는 효과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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