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항일독립투사 박희광 의사 특집 보도자료.(2012.08.15)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9-16 오후 06:26:11 조회 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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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의 희생으로 지킨 대한민국”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기념사업회 보도자료

자료배포일: 2012. 8. 15(수) 배포부서: 기념사업부Tel,053)-759-9849,
053)-473-0070,Mobile,010-7759-9849, 010-2504-9849 사무처장: 박정용

광복 제67주년 독립투쟁 특집

◈ 항일독립투사 박희광의사 특집보도자료

◈ 2012년8월15일 광복 제67주년을 기해 박희광선생의 항일독립운동기록자료

박 의사 기념 사업회는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 찾기 위해 국내외 에서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독립투쟁자료를 기고합니다.

【참고자료 1】

“애국지사 박희광선생 항일독립운동자료 잇따라 발굴”

항일 암살단 활약상, 독립신문서 보도(1924년7월26일자)

민족반역자, 친일파, 매국노, 암살처단 군자금 탈취, 1심 사형선고, 2심무기형 받아, 중국 뤼순형무소20년 간 복역, 광복된 조국에 돌아와 양복수선 업으로 어려운 생계연명.

애국지사고(故)박희광(1901-1970)선생의 항일독립운동활약을 고증할 수 있는 희귀 자료들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관심을 모우고 있다. 이번자료들은 애국지사 박희광 선생 기념사업회가
영남대학교와 대구한의대 남상권 (국문학과)교수의 도움으로 독립신문에 게재된 기사와 관동청 지방법원 판결기록문, 경무국 사찰보고서, 조선총독부등에 보관 되어있던 자료10 여건을
언론에 기고한 것이다.

독립신문 1924년 7월26일자에 “삼장사(三壯士)의 용감(勇敢)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김광추 (金光秋) 김병헌(金炳憲) 박상만(朴相萬· 박희광 별명) 삼장사(三壯士)가
백주(白晝)에 용감(勇敢)히 봉천신시가정정(奉天新市街錠釘)즉 왜 경찰서접근(倭警察署接近)에 은복(隱伏)한 전보민회괴수(保民會魁首) 최정규(崔晶奎)의 가족을 토벌(討伐)했다 는 등
항일독립운동 일대기를 기록했다.

박희광 선생은 구미 봉곡동에서 태어나 8세 때 부친을 따라 만주로 이주한 뒤 18세 때 만주 서간도 지역 민족주의자들이 결성한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오동진
(吳東鎭)선생 휘하에 입대해 김광추, 김병헌 등과 임시정부 3인조 암살특공대원으로 맹활약을 했다.

박 선생은1924년 6월 여순 경찰서 고등계 첩자로 악명이 높았던 정갑주을 주살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7월 일본요정 금정관에 침입해 군자금1,000원을 요구하며 300원을 탈취해 나
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관동청 지방법원1심에 사형 뤼순 고등법원2심에 무기형을 언도받고 중국뤼순(旅順) 형무소에서
20년 복역하던 중 감형돼 1943년 출옥했으며, 1968년3월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박 선생은 감옥에서 익힌 재봉기술로 양복 수선 업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가 1970년1월22일 향년71세 로 타계했다.

● 1973.03.01 朴正熙 大統領으로부터 애국지사 박
희광선생 지상“(愛國志士朴喜光先生之像)” 親筆揮毫와 下賜金“일백만원”받아 銅像(胸像)주조.

● 1972년3월에 결성된 박 의사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12년 만에 박 선생의 동상(立像) 작품(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최기원교수) 문화공보부 심의필84-1호로 지정 되여 1984년8월15일 기공 1984년12월28일
구미 금오산 도립공원 자연환경 연수원 입구 백운교 옆에 부지74평, 기단275cm 동상270cm 크기로 건립됐다.

● 1997.08.15 박희광 선생 귀국(환국)하여 여생을 보내시던 달구벌에 대구광역시심의96-8호로지정 愛國志士 朴喜光 先生 銅像(胸像)“統一念願 太極횃불彫刻像”建立除幕(大邱두류공원人物東山 內). (홍익대학교미술대학 최기원 교수)의 조형조각 작품으로 건립제막 하였다.

● 2011.11.17 구미금오산 박 의사동상(立像)복원보수제건립27년 동안 풍화작용으로 훼손된 동상을 復元建立 靑銅群像(統義府3人 特攻隊員形象)중 부조 및“太極시문양彫刻像”建立除幕 (龜尾 金烏山 道立公園境內).

● 2010.3.1 - 2014.12.31(建立竣工시까지) 愛國志士 朴喜光 先生 故鄕옛터 生家復元 및 追慕館건립, 겨레(愛國)東山造成事業(慶北 龜尾市 蓬谷洞173-1)竣工豫定으로 國費,道費,龜尾市費을 지원받아 光復會와 紀念 事業會, 언론기관, 각 報勳團體, 協議 後援받아 현제 추진 중에 있으며. 이곳이 顯忠施設로서 후세들의 愛國愛族 하는 나라사랑정신의 살아있는 體驗 敎育場으로서 役割을 다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推進하고 있으며. 生家復元事業을 推進하는 朴 先生의 둘째아들로 紀念 事業會 事務處長을 맡고 있는 朴正用氏는 “愛國志士 朴喜光先生의 救國抗爭精神科 나라사랑 歷史意識을 자라나는 學生들에게 제대로 알려 民族正氣宣揚科 獨立精神을 繼承해갔으면 한 다“고 말했다.


2012. 8. 15.

愛國志士 朴喜光先生 紀念事業會



독립신문 기사


1. 신문기사별


독립신문
기사제목 三壯士의 勇敢
발행일 1924-07-26
생산정보 1-3
제176호


奉天은 東三省의 首府인 第一大都會오 우리의 敵倭奴난 滿蒙經營에 根據地로 軍隊及警察이 鐵鋼가치 森羅한 곳이며 따라 韓面倭腸에 鷹犬輩의 總集窟穴이라고도 할 만한 곳이다 年來 奉天各地方에 散在하야 敵에 鷹犬으로 敵의 爪牙로 所謂保民會이니 日民團이니 하고 우리에 運動을 妨害하며 民族을 殺戮하며 隣國에 同情을 撲奮하던 大犬小犬輩난 우리 獨立軍의게 박滅을 當하고 其餘黨殘輩난 一時殘命을 保存커 爲하야 全部 奉天市街 卽倭敵의 租界로 總히 기여들럿다 그러므로 우리 獨立黨은 奉天을 向하야 呪咀한 지 已久하엿고 本報에도 死刑宣告를 揭載한 者 不下十餘名이 이섯다 그러나 엇던 義氣男兒가 容易히 死刑執行에 着手치 못한 것은 如何한 事情으로 그러하엿던지 或은 機會를 窺見하던지는 다 말할 것 업거니와 去月七日 金光秋 金炳憲 朴相萬三壯士가 白晝에 勇敢히 奉天新市街錠町 卽倭警察署接近에 隱伏한 前保民會魁首 崔晶奎의 家族을 討伐하고 四五萬戶居住하난 大都街上에서 一大 猛虎가 犬羊羣中에셔 來往하드시 一邊 敵警과 擊鬪하며 一邊 軍資을 募集하며 東에 번쩍 西에 번적 城外城內가 一時 大 소동이 起하엿다 한다 壯哉라 三壯士여 原來 이 三壯士난 我義勇軍第五中隊 ●鳴鳳將軍의 部下인대 金光秋壯士난 長奉鐵道沿邊 잇난 敵에 行政破壞며 鷹犬討伐等事를 專擔한 冒險隊長이다 그 三壯士의 履歷은 別項과 如하거니와 이제 그 詳報를 接하건대 三壯士가 本營인 五中隊을 出發할 時에 三人이 盟約하기를 爲先 奉天에 잇난 鷹犬輩를 肅淸치 못하면 歸營치 안키로 各自 血約올 結하고 藍縷한 中服을 換着한 後 가즌 武器를 携帶하고 晝息夜行으로 其地까지 來하야 崔犬의 有無를 密探하고 前期 一夜를 東北陵雲霧中에서 經過하고 當日 卽七日 午時頃에 目的地에 到達하야 爲先 巨魁인 崔犬을 몬져 討伐하고 次第로 肅淸하자는 主見下에서 着手하엿던 것이다 그러나 不幸히 目的物인 崔犬은 樓上冊床底에 隱伏하야 賤命을 姑保케 되고 그外 牝犬黑犬이 代命을 하엿다 한다 不幸히 金朴兩壯士난 無知沒覺한 中警의게 被捉된 後 倭敵의게로 引渡되야 畢竟 堅固한 目的을 達치 못하고 殉國케 되엿고 金光秋壯난 勇敢히 鐵網을 버서나스나 兩同志에 不幸을 痛嘆하며 다시 繼續 活動하기로 內定하고 撫順縣 馬盛庄 子農村에 潛住하야 一邊 本隊에 同志派送을 다시 請하며 一邊 鷹犬輩에 協迫狀을 發하고 잇던 中 그곳 不良輩에 密告로 敵警의게 包圍攻擊을 當하야스나 一當百에 勇氣로 擊戰하다가 敵의 包圍線을 突破하고 勇敢히 退出하던 中 流彈에 中하야 去月十五日 下午五時頃 終末不歸에 客이 되여 當地에서 殉國하엿다 한다 成功 與否난 別問題로 付하고 三壯士의 義氣를 뉘 안이 彈服하며 三壯士의 不幸을 뉘 안이 可惜다 하며 崔犬의 罪惡을 뉘 안이 公誅할이오 三壯士의 殉國은 萬世竹帛에 永遠한 光彩오 崔犬의 姑生은 子孫萬代에 永久한 滅亡이다 不幸타 崔犬이어 汝의 罪惡이 얼마나 澈天이 되엿난가 汝의 罪惡으로 二三羣犬이 先히 代命되여스니 다시 汝의 殘命을 執行하기까지 멧 羣犬이나 前輩로 세우고 汝의 肉體을 烏鴉의게 供할가
起하라 三壯士의 同志여 繼續 活動할지어다


2. 신문기사별(이미지 파일 별첨)

독립신문

기사제목 撫順, 奉天 等地에 잇난 親倭輩를 討伐
발행일 1924-07-26
생산정보 3-1
제176호

독립신문자료(발행일1924.7.26)

< 아래는 위의 기사 옮긴 자료>

위의 기사 제목: 撫順, 奉天 等地에 잇난 親倭輩를 討伐

撫順서 二人 奉天서 二人을 銃殺한 後에 中警에게 被捉

撫順에 先着手
我義勇軍第五中隊의 南滿鐵路沿線의 親倭輩討伐隊에 先發隊長 金光秋, 朴相萬, 金炳賢三氏은 去六月一日에 撫順에 出張하야 當地 倭系民會書記로 이서 親倭的行動을 하든 鄭甲周(二七)와 그의 妻子를 銃殺하고 그 附近 廣告板에 前記 鄭을 死刑한 理由와 自己네는 五中隊에 出張員임을 宣明하고 從跡을 감추엇다

鄭甲周는 偵探
前記와 갓치 死刑을 當한 鄭甲周는 平北江界人으로 撫順等 要路에 이서 我獨立團에 事情을 偵探하며 該地方을 通行하난 獨立軍을 逮捕하난 等 已往 우리 事業을 만이 妨害한 韓面倭腸의 惡 이라더라

奉天에서 大活動
崔晶奎家을 襲擊하야 二名을 死刑하고 逃避
義勇軍第五中隊出張員 金光秋 朴相萬 金炳賢 三氏는 前記와 가치 撫順에서 親倭輩 鄭甲周等 三人을 銃殺한 後 奉天에 潛伏하고 잇다가 去月七日夜에 南滿一帶에 保民會創設者로 親倭派에 巨頭인 崔晶奎(四四)家을 襲擊하야 晶奎의 妻母와 同家의 書記 朴元植을 射殺하고 晶奎는 마츰 二層樓에 잇다가 逃亡하야 生命을 扶支하엿다 하며 一行은 또다시 當地 大西關에 잇난 韓人料理店에 浸入하야 三百餘元의 軍資金을 募捐하야 가지고 奉天城裏로 몸을 避하엿다더라

中警에게 逮捕
前記와 가치 目的한바 晶奎는 殺害치 못하야스나 事件은 大槪 無事히 되야 奉天城裏까지 避身한 一行中 二人은 不幸히 中國官憲에게 逮捕되엿다 하는대 中國側에서는 卽히 倭手에게로 引渡하엿다더라

兩氏는 靑年冒險家
前項에 事實과 가치 撫順奉天一帶에서 一大 活動을 開始하야 倭敵의 耳目을 驚動케 하며 親倭輩의 肝膽을 서늘케 한 朴相萬(十九) 金炳賢(二十) 兩氏는 共히 多年間 軍界에 從事하여 前後幾次의 冒險에 大成功하여스며 我軍人間에는 靑年冒險家라 하야 그의 勇氣을 羨望하여 마지아니하든바 今次에 被捉되여슴을 愛惜키 여기여 마지아니한다고 하다

一行一人인 金光秋는 撫順에서 殉國
奉天에서 同志二人을 일흔 金光秋는 그 後 撫順馬城庄子 某韓人家에 潛伏하고 殘務를 收拾하든 中 지난 六月十五日에 孔承煥의 密告로 因하야 倭警은 그를 逮捕코져 하야 當場에 이르러 서로 放銃應戰하다가 不幸히 金씨는 敵彈에 命中되여 殉國되엿다

金氏의 略歷
氏는 原來 中國에서 生長하야 中國學校를 畢業하여스먜 中語를 能通하며 中人間交際에 熟達하야 現 第五中隊長 金鳴鳳氏와 가치 軍務를 熱心으로 보아 實로 五中隊의 第一有功者라 하리 만치 우리 光復事業을 爲하야 努力하엿다 現在도 五中隊의 經理로 이서 事務를 處理하든 中 今次 出張에 不幸히 殉國하게 되여 同隊全員은 特別히 愛惜함을 不勝한다 하며 더우이 芳年 二十六歲의 靑春에 몸으로 不歸客됨을 서러워하야 마지아니한다고 한다


3. 신문기사별(국내 신문자료 3건 포함)

동아일보
기사제목: 親日派討伐事件公判記 (一) 세상을 놀내이든 친일파 토벌대사건 대련관동청디방법원에서 공판개뎡//被告는 前後四名, 金炳賢 朴相萬 尹永基 申明球
발행년월일 1925-08-31
발행구분 무
면수 02
단수 01
표제어 무력투쟁-친일파토벌사건

외 3건은 이미 공개된 자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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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만 선생 관련 언론 연표

1. 독립신문(義勇軍 第5中隊 친일파토벌대 金光秋·朴相萬(본명,朴喜光)·金炳賢. 1924.7.26)


親日派殺害事件(大蓮關東廳地方法院)
대정14년공판1924년9월1일2일(동아일보)

滿鐵沿線一帶의親日派殺害事件(大蓮關東廳地方法院)
대정14년 제2회 공판(5)1924년9월8일(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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